요약
- 일본인에게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 재건축은 좋은 일이 아님
- 도쿄 선호도는 지속 상승. 젊은 세대는 임대차 선호(임대차 비율 50%)
- 일본에서는 아파트가 비선호 주택
주택은 고가의 소모품
필자가 10년 전 일본 도심 외곽에 집을 산 분에게 집 값이 얼마나 올랐냐고 물었는데, "바닥일 때 샀는데, 다행히 그대로야" 라고 웃으며 답변했다고 해요.
부동산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투자 자산’으로 여겨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결국에는 10년 후엔 올라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도 그랬을까요?
일본에서 주택은 투자 자산이 아닌 자동차나 휴대폰 같은 고가의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휴대폰도 느려지고 고장이 나는 시한이 있듯, 일본에선 주택의 수명을 20~30년 정도로 봐요. 그 정도 되면 지진이나 쓰나미 한 번쯤은 겪기 마련이라 구조물들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라는 거죠.
시기가 되면 재건축을 하거나 보수, 또는 리모델링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집을 수리하는 데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요. 게다가 재건축이 결정됐다고 해도 대부분 일률적으로 현재 감가상각 된 건물가치 기준으로 현금 보상을 받기 때문에, 일본에서 재건축이란 좋은 일이 아니에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집을 반드시 사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죠.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는데 대출은 계속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대로 거주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주택 소유는 크게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에요.
마라맛 부동산을 맛보다
일본인들은 언제부터 ‘집은 사면 무조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일본도 한때 ‘부동산 불패’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버블이 형성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1980년대 돈을 풀어 내수를 부양했던 부동산 버블이 일었던 때인데요. 90년대 들어 결국 버블이 터지고, 부동산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임대 가격도 무섭게 떨어졌어요.
대출을 잔뜩 받아 주택을 구매했던 사람들이 감당 안 되는 이자와 원리금 상환 압박을 받는 경험을 한 뒤, 더 이상 주택은 투자의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죠. 마라맛 부동산 시장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그때 이후 주택은 그저 삶의 터전일 뿐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는 곧 부동산 거래에서 매매보다 임대차 수요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1980년대 25~30% 수준에 그쳤던 임대차 비율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시장 거래량의 50%대까지 치솟게 됩니다.
요즘 일본의 청년 중에서는 집을 사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매우 적어요. 굳이 내가 집을 산다면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 도심 외곽으로 나가서 단독주택을 짓겠다’라는 계획을 가진 청년들이 많다고 해요.
‘결혼 후 도쿄 입성이 아니라 오히려 외곽으로 나간다고?’ 하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일본의 청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외곽이 오히려 교통, 교육, 녹지 등 인프라 측면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도 청년층의 주거 문제가 지원책이 필요할 만큼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해요. 일본은 공공 임대 시장이 매우 크고, 나라에서 가격을 안정적으로 붙잡고 있는 덕분에 민간 사업자들이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는 구조예요.
예외는 있다: 도쿄
그런데 도쿄는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주택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에요. 건축비용 증가와 공급 부족으로 아파트 가격이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바로 그곳이죠. 특히 도쿄 핵심지역을 뜻하는 ‘도쿄 23구’에 거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매우 높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이들의 경우 더욱 도시에 계속 거주하며 일을 하고 싶어 해요.
도쿄는 집값도 계속 오른다는데, 집을 사면 참 좋겠지만 일본 청년에게 도쿄 집값은 매우 비싼 편입니다. 도쿄 23구 인기 지역에 있는 방1개, 거실, 다이닝룸, 주방으로 구성된 12평짜리 맨션의 가격은 한화로 10억 원이 넘습니다. 신축이라면 15억 원 이상으로 올라가요.
이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임대를 선택하는 성향이 점점 강해지는데요.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 둘만 사는 가구가 많아지면서 넓은 거주 공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삶의 변화가 임대 수요를 변화시키고 있는 거죠.
우리와는 조금 다른 일본의 주택 개념
그럼 일본 20~30대 청년들은 어떤 집에서 살까요? 보통 도심이나 지역의 역 근처에 있는 ‘맨션’에 많이 삽니다. 맨션은 3층 이상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물인데요. 도심에는 초고층의 ‘타워맨션’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습니다. 타워맨션은 최근 일본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예요. 도쿄 23구에 있는 새로 지은 초고층 타워맨션의 경우, 7평짜리 원룸 월세가 최소 130만 원 선입니다. 이를 훌쩍 넘는 가격도 즐비하고요.
일본에도 아파트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가 아니고, 주로 2층짜리 목조 또는 철골 구조의 다소 허름한 건축물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해요.
그럼 거주 옵션이 맨션, 아파트, 단독주택 밖에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UR이라는 공공임대 주택이 있어요. 정부가 직접 매입해 관리하는 임대 아파트인데, 단지 내 놀이터와 녹지 공간 등을 갖추고 있어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모습이에요. UR 임대 주택은 보통 집을 구할 때 초기비용으로 나가는 중개수수료, 사례금, 보증금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소득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 심사기준도 높으며, 대개 30년~50년 된 노후 건물이 많습니다. 요즘은 신축 UR을 건축할 토지가 부족한 탓에 타워맨션 형태로 많이 짓고 있다고 합니다.